2010.07.17 21:52 문학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

맘에 든다.


범죄가 일어나지만, 알콩달콤한 맛도 있다.
[화차 - 현실을 깊이 담은 추리소설]에서 만족했다가,
[마술을 속삭이다 - 속삭임]에서 실망했었는데,
이런 소설도 쓰는구나.

-말없이 있어 줘-에서 직장상사인 구로사카 과장이 나가사키 사토미에게 심한 농을 하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장면,
"우리도 젊고 싱싱한 여자가 끓여 주는 차를 마시고 싶어."
(중략)
"나가사키 씨한테는 이제 질렸어. 완전히 아줌마가 다 됐잖아."
삽시간에 실내가 조용해졌다.
(중략)
"나가사키 씨는 고양이 혀인가?"
"네?"
"아니, 자네가 끓여 주는 차는 언제나 미지근해서 말이지. 혹시 집에서 맥주를 마실 때도 고양이 밥 같은 걸 안주로 먹는거 아냐? 응?"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여섯개의 찻잔을 올린 쟁반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나 그렇겠죠."
"당신은 좋겠어요. 하루 종일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주는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남이 끓여다 주는 뜨거운 차를 마실 수 있으니까.(중략)"
보면 볼수록 과장의 눈썹과 눈 사이가 점점 새하얗게 질려간다. 아, 핏기가 가신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하고 사토미는 어렴풋이 느꼈다.
"깔보지 마세요, 질렸다니. 전 당신 여자도 뭐도 아니에요. 아줌마? 그럼 당신 부인은 아줌마가 아니란 말이야? 언제나 뻔질나게 자랑하는 당신 딸도 아역 배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운이 좋아야 언젠가 아줌마가 되는거야."
(중략)
"칠월이 되면 새 여사원이 오겠죠? 싱싱하고 젊은 여자라면서요? 댁 좋으실 대로 그 아가씨에게 똥구멍까지 닦아 달라고 하세요. 웃기지 말라 그래, 이 얼간이 같은게."
-본문 59-60쪽 중,

또는, -나는 운이 없어-도 참 재미있다. 이렇게 허술한 사람이 있나 싶기도 하고.

단편 모음집이면서도, 여러 모로 기대 이상의 책이다.

posted by ahnjinho